By Rupa Subramanya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인도 여성과 사건 당일 함께 있었던 친구가 힌디어 뉴스 채널 지(zee)와 가진 독점 인터뷰에서 사건 당일 상황을 자세하게 털어놨다. 이 남성도 이달 3일(목) 기소된 가해자들로부터 사건 당일 흠씬 두들겨 맞았다. 올해 스물여덟 살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알려진 이 남성은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살아남았다. 필자는 힌디어로 진행된 피해 남성의 인터뷰를 시청했다.
피해 남성은 행인들과 사법당국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모른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 말을 듣고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과 친구가 잔인하게 구타를 당하고, 옷가지와 소지품까지 빼앗긴 채 버스 밖으로 던져졌고, 친구는 출혈이 심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피해 남성의 발언 일부를 소개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오토릭샤(인도에서 저렴한 택시로 이용되는, 엔진을 장착한 삼륜차)와 자동차, 자전거를 멈추게 하려고 25분이나 기다렸다. 그러다가 순찰 중이던 사람이 우리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지나가던 시민들 중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그날 밤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었어도 결과가 이처럼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수순대로, 유명 방송인을 비롯한 많은 인도 인사들이 자성의 발언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먼저 방송인 사가리카 고스(Sagarika Ghose)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법은 개정한다고 치자. 지나가던 사람 중에 추위 속에서 옷이 벗겨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피해 여성의 몸을 가려주거나 도와주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 충격적인 무관심의 세태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경찰 국장이었다가 현재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키란 베디(Kiran Bedi)는 “피해 여성의 남자친구가 방송에 출연해 고백한 발언을 들어보면 인도 사회가 전반적으로 인간성이 상실됐음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인들이 타인의 비극을 보고도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신경한지 성토하는 신문 사설과 TV 논평은 앞으로도 더 나올 것이다. 사람들이 왜 선뜻 도우려고 하는지 심리학적으로 원인을 분석하면서 ‘방관자 효과’라는 단어도 분명히 언급될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비극과 그 비극에 대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들을 보면서, 필자는 이 모든 장면이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2011년 후반 뭄바이에서 키난 산토스와 루벤 페르난데스라는 청년 두 명이 거리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는데도 행인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숨졌다. 비극이 발생한 이후 키난 산토스의 친구이자 사건 현장에 있었던 피르얀카 페르난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잔인하게 여러 번 칼에 찔리고 있을 때 주위에 목격자가 적어도 50명은 있었다. 우리는 도와달라고 소리 쳤지만 다들 무신경한 눈빛으로 가만히 있었다. 극악무도한 범죄에 맞서 싸우며 우리를 도우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에도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것이 현대 인도의 문화가 돼버렸다며 전통적인 도덕과 가치가 무너진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뭄바이 사건에서나 델리 참사를 이렇게 문화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비벡 데헤자(Vivek Dehejia) 경제학 교수와 필자는 최근 발간된 ‘인디아노믹스: 현대 인도를 이해하는 방법(Indianomix: Making Sense of Modern India)’에서 뭄바이 사건을 심층 분석했다. 최근 중국에서 어린 아이가 길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사건도 탐구했다. 이 책에서 필자와 데헤자 교수가 시도한 분석은 델리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와 데헤자 교수는 이런 무관심이 나타나는 원인을 문화적 현상에서 찾지 않고, 기본적인 경제학적 개념인 ‘보상(incentive)’과 진화생물학의 이타적 행동을 통해 해석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 사회에서든 동물의 왕국에서든 이타주의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몹시 취약한 개념이다. 인간의 DNA에 아무리 이타적 경향이 강하게 잠재돼 있더라도,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또한 이타심 못지않게 강력하다. 이타주의와 자기보호 본능은 이처럼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의를 본 ‘영웅’이 이타적 충동에 이끌리더라도, 자신이 앞으로 치러야할 ‘비용’과 타인을 돕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이득인지 저울질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용’은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적인 비용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건에 휘말린 사람이 경찰서에 출석해서 진술하고 조사를 받으면서 보낼, 몇 시간, 며칠, 어쩌면 몇 주가 될지도 모를 시간을 가리킨다. 필자와 데헤자 교수는 책에서 인도 사건과 중국 사건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나선 사람이 경찰 조사에 시달리고 가해자로 잘못 기소되거나 심지어는 도와주려고 했던 피해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기술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대부분 사법당국을 신뢰하지 않으며 앞에서 말한 결과에 휘말릴까 두려워 사건에 연루되려고 하지 않는다. 도와주기 싫어서도 아니고, 인도 문화에 무관심이 아로새겨진 것도 아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보다, 도와주다가 경험하지 않아도 될 괴로움을 겪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구 여러 나라와 인도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법(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 구조거부죄 또는 불구조죄라고 함)’의 부재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한 사람은 (중과실이 아닐 경우)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호하는 조항이다. 유럽과 캐나다 퀘벡의 민사법 영역에도 ‘구조의 의무’를 명시한 법 조항이 있다.
필자와 데헤자 교수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세이브 라이프 파운데이션’을 만든 피유시 테와리(Piyush Tewari)를 취재했다. ‘세이브 라이프 파운데이션’은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떨치고, 길거리에서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을 돕자는 취지로 델리에 설립한 비정부기구(NGO)다.
테와리는 어린 조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동안 행인들이 아무도 돕지 않는 사건을 겪은 후 이 단체를 설립하게 됐다. 테와리의 접근법에서 핵심은 ‘세이브 라이프 파운데이션’과 지역 정부에서 사전 심사를 통해 선발된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하자는 것이다. 테와리는 이 방법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델리와 마하라슈트라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해봤다.
테와리가 이끄는 팀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응급처치와 구조의 기본을 훈련시키고 이들이 남을 도울 선의가 있는지도 면밀히 확인했다. (이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자원봉사자 명단을 작성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필자는 이런 방법을 이전에도 비판한 바 있다.) 이렇게 했더니 자원봉사자들이 구조에 나서더라도 사법당국으로부터 불필요한 괴롭힘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테와리는 사람들이 선뜻 남을 돕지 않는 분위기를 바꾸려면, 인도에도 ‘선한 사마리아인 법’과 같은 조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테와리는 델리 사건에서 행인들이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인도인들의 머릿속에 사건에 휘말리면 경찰과 사법당국에 시달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테와리는 델리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를 발견한 어떤 사람이 피해자를 가까운 응급실로 긴급 후송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비탄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도움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를 당장 없애지 않으면, 델리 집단 성폭행 사건이나 뭄바이 청년 사망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두려움이 압도하게 될 것이다.”
피해 남성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경청해보면, 이 남성은 현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심한 충격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돕지 않는 이유를 상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고 냉철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를 도왔다가 사건의 증인이 돼서 경찰서나 법원에 출두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델리 참사 이후 인도 정부는 성폭행 관련 법을 강화하고 가해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고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법적 조항을 만들기 위해 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사실을 예측한 독자들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델리고등법원 판사였던 V.S. 아가르왈이 이끄는 전문가 집단을 만들어, 인도에도 ‘선한 사마리안인 법’이 필요한지 조사해보라고 시킨 사실을 아는 독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테와리도 이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6일 델리에서는 두 가지 비극이 발생했다. 첫 번째 비극은 버스에 탔던 젊은 연인들에게 일어났던, 우리가 모두 다 아는 그 사건이다. 두 번째 비극은 피해 여성의 목숨이 촌각에 달린 시점에서 빨리 병원으로 후송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피해 여성의 남자친구도 지금 인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촛불을 밝힐 시간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뜯어고칠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길에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야 한다.”
촛불시위를 하고 무관심을 성토하는 것으로는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두려운 마음이 드는 사회 구조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제정함으로써 눈앞에서 범죄가 벌어져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절실한 때다.
글쓴이 루파 수브라마냐는 ‘인도 리얼 타임’에 경제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인디아노믹스: 현대 인도를 이해하는 방법(랜덤하우스 인도)’를 공동 집필했다.